규로롱
조직과 사람7

관리자가 하던 일, 리더가 해야 할 일

정보를 옮기는 일과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 AI가 가져간 것은 하나뿐인데 관리자가 통째로 사라졌고, 남은 판단은 리더에게 올라갑니다.

조직도의 중간 칸에는 두 가지 일이 섞여 있었습니다. 정보를 위아래로 옮기는 일과, 애매한 것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책임지는 일입니다. AI가 가져가는 것은 앞의 하나뿐인데, 관리자까지 사라졌습니다.

먼저 두 역할을 구분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관리자는 그 중간 자리에 앉은 사람이고, 리더는 그 자리를 유지할지 없앨지 정하는 사람입니다. 한국 회사에서는 관리자도 리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관리자가 사라진다는 말이 리더가 사라진다는 말로 읽히기 쉬운데, 여기서는 지워지는 쪽과 지우는 쪽이 다릅니다.

중간 관리자는 이미 줄고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Live Data Technologies의 자료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3년 화이트칼라 감원에서 중간 관리자가 차지한 비중은 30%를 넘었습니다. 2018년에는 20% 수준이었습니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조직의 20%가 AI로 구조를 평평하게 만들면서 현재 중간 관리직의 절반 이상을 없앨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 숫자들이 전부 AI 때문은 아닙니다. 그전부터 있던 흐름이고, 경기와 금리의 영향도 있습니다. 다만 방향은 한쪽입니다. 그리고 방향이 보이면, 무엇이 함께 사라지는지 정확히 보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두 가지 일이 관리자 한 명에게 묶여 있던 이유

관리자가 실제로 하던 일을 나눠보면 두 갈래입니다.

전달: 상부에서 온 지시를 실무자가 알아들을 말로 바꾸고, 실무자에게서 온 작업을 상부가 볼 형태로 정리하는 일. 주간보고, 취합, 조율, 일정 관리, 진행 상황 파악.

판단/책임: 애매한 것을 정하는 일. 두 사람의 말이 다를 때 어느 쪽으로 갈지, 이 정도면 내보내도 되는지, 이번엔 늦춰도 되는지. 그리고 그 결정이 틀렸을 때 책임을 지는 자리.

조직도는 이 둘을 한 명에게 묶어놨습니다. 묶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판단하려면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정보는 전달 과정을 거쳐야만 모였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옮기는 사람이 그 정보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옮기는 자리에 정하는 권한을 같이 얹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AI는 그 전제를 지웁니다. 취합은 저절로 되고, 정보는 옮기지 않아도 한곳에 모입니다. AI가 없앤 것은 정보를 옮기는 일이지, 애매한 것을 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두 가지 일을 한 명에게 묶어둘 이유가 없어졌을 뿐, 판단은 그대로 남습니다.

관리자가 사라지면 둘 다 사라집니다

정보 전달이 자동화되었으니 그 자리는 없어도 된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그런데 조직에서 자리를 없앨 때는 사람 단위로 없앱니다. 관리자가 하던 판단은 명시적으로 누구에게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냥 없어집니다.

그러면 결정이 멈추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결정은 계속 납니다. 다만 결정에 이름이 없어집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고 아무도 승인하지 않았는데 일이 진행됩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이 그렇게 했다"가 답이 됩니다. 그 답은 아무것도 고치지 못합니다. 책임져야할 사람이 특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보뎃(Robodebt)이라고 불린 호주 정부의 복지 채무 환수가 그 경우입니다. 2016년에 사람이 보던 소득 확인을 연 소득을 26으로 나눈 평균값이 대신했고, 그렇게 계산된 빚 47만 건이 2020년에 통째로 취소됐습니다. 계산이 틀렸다는 것까지는 그때 정리됐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책임인지는 3년 뒤 왕립조사위원회가 990쪽짜리 보고서를 내고서야 정리됐고, 수사기관에 회부된 이름들은 봉인된 56쪽 안에 있다가 2026년 3월에야 공개됐습니다. 자동화가 시작된 지 10년 가까이 지난 뒤입니다.

한국은 그 대답할 자리를 법으로 세워뒀습니다. 2024년 3월부터 개인정보 보호법 제37조의2는 사람의 개입 없이 내려진 결정이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 거부할 수 있게 하고, 자동화된 결정에는 설명을 요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요구를 받은 쪽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사람이 다시 처리해야 합니다. 다만 회사 안에서 그 설명을 누가 하는지까지 법이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AI 사용이 늘어날수록 책임 지는 자리는 오히려 더 필요해집니다. 사람이 100명일 때는 결정이 그 100명 사이의 대화 어딘가에서 나왔습니다. 누가 정했는지 불분명해도 대화의 흔적이 남았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AI 에이전트 100개는 대화하지 않습니다. 조건대로 실행할 뿐입니다. 그 조건을 누가 정했는지가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으면, 회사는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아주 빠르게 굴러갑니다.

리더가 배정하는 것이 바뀝니다

판단이 갈 곳을 잃으면 그 일은 위로 올라갑니다. 그 위가 리더입니다. 직함이 아니라 권한이라, 창업자이거나 한 서비스를 그만큼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중간 자리가 비는 만큼 리더가 하던 일도 같이 바뀝니다.

회사에서 리더가 오랜 시간 공들여 정해온 것은 인원 배정입니다. 어느 팀에 몇 명을 더 줄 것인가. 그 질문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어느 팀이 얼마나 많은 AI 에이전트를, 얼마나 오래 돌릴 것인가.

단위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사람에게 일을 줄 때는 "이거 좀 맡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나머지는 그 사람이 채웠습니다. 애매한 지시를 알아듣고 빈칸을 알아서 메우는 것이 실무자의 능력이었고, 조직은 오랫동안 그 능력 위에서 굴러갔습니다. 지시가 정확해서 일이 된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역량이 좋아서 된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AI 에이전트는 그 빈칸을 메우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메우기는 하는데 물어보지 않고 메웁니다. 애매하게 시키면 애매한 결과가 아주 빠르게, 아주 많이 나옵니다.

AI는 리더의 모호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동안 사람이 대신 견뎌주던 것입니다. 이건 리더에게 나쁜 소식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오래 미뤄둔 청구서가 도착한 것에 가깝습니다.

남는 일

그래서 리더에게 남는 일을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 조건을 문장으로 쓰는 일. 그동안 말로 때우던 판단 기준을 적어야 합니다. 어디까지는 알아서 하고 어디부터는 물어보는지, 무엇을 우선하는지. 이건 위임이 아니라 명시입니다. 위임은 빈칸을 남겨두고 그 사람을 믿는 것이고, 명시는 빈칸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둘은 전혀 다른 일이고, 명시가 훨씬 어렵습니다.

둘째, 지울 것을 지우는 일. 앞 글에서 쓴 것처럼, 자동화는 순서상 맨 마지막입니다. 그 앞의 삭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조직에서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지울 것 중 하나는 대면 보고와 구두 지시입니다. 없애면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글로 자리를 옮깁니다. 개발팀이 이슈와 풀 리퀘스트에 남기며 일하는 방식이 이미 그렇습니다. 말로 오가던 판단이 문서에 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회사는 자기가 왜 그렇게 하는지를 기계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셋째, AI가 닿지 않는 현실세계 담당 협상, 갈등 조정, 규제 대응. 이 일들이 남는 이유는 어려워서가 아니라 상대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사람은 제안의 내용만 보지 않습니다. 그 제안을 한 사람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같이 봅니다. 양쪽에 그런 사람이 있어야 협상이 굴러갑니다.

관리자와 관리

관리자라는 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관리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앞의 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고, 뒤의 것은 일어나면 안 됩니다.

관리자 자리를 지우기 전에,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나눠보는 일이 먼저입니다. 전달은 기계로 넘기고, 판단은 이름이 붙는 자리로 옮깁니다. 그 자리가 리더든 실무자든 상관없지만 누구인지는 적혀 있어야 합니다. 그 순서를 건너뛰면 조직은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얇아집니다.

판단이 갈 자리를 정하는 데까지가 이 글의 몫입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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