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출의 첫 칸은 이제 스스로 만듭니다
신입에게도 일할 능력을 묻는 시장에서 회사가 주던 첫 칸이 사라졌습니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그 첫 칸입니다.
청년 고용 통계를 한동안 들여다봤습니다. 읽을수록 결론이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회사가 신입을 뽑지 않고, 뽑더라도 일을 잘할 능력을 묻고, 그나마 남아 있던 초급 업무는 AI가 가져가고 있으니, 결국 일자리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올해 시작한 「모두의 창업」도 같은 결론을 낸 것처럼 읽힙니다. 6만 명이 넘게 신청했습니다.
저의 답은 절반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까지는 맞습니다. 다만 만들어야 하는 것은 회사가 아닙니다. 회사가 신입에게 주던 것, 사회진출의 첫 칸입니다. 이 글은 그 첫 칸이 무엇으로 되어 있었고, 왜 사라졌고, 무엇으로 대신 놓을 수 있는지를 적습니다.
신입에게 일하는 능력을 묻는 회사
인사 일을 하면서 채용을 가까이서 봤습니다. 거기서 배운 것 하나가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회사가 신입에게 일해본 능력을 묻는 것은 이 사람이 실제로 일을 해낸다는 것을 누가 이미 확인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경력증명서는 그 확인을 다른 회사가 돈을 들여 해줬다는 영수증입니다. 회사는 영수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없는 사람을 뽑으면 그 확인을 자기가 해야 하고, 확인이 끝날 때까지 월급을 주면서 기다려야 하니까요.
예전에는 그 기다림을 회사가 감당했습니다. 신입을 뽑아 자료를 모으게 하고 회의록을 쓰게 하고 초안을 잡게 하면서, 이 사람이 되는 사람인지를 1,2년에 걸쳐 확인했습니다. 그 1,2년이 사회진출의 첫 칸입니다. 회사가 값을 치르고 만들어주던 영수증이었습니다.
지금 회사들은 그 칸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500대 기업에 물은 2025년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 조사를 전한 대기업 '중고 신입' 선호도 높아져…수시채용·경력직이 '대세'에 따르면, 지난해 뽑은 대졸 신입의 28.1퍼센트가 이미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해 전 조사에서는 25.8퍼센트였습니다. 그 경력의 길이로 가장 많은 것이 1~2년입니다. 첫 칸의 길이와 같습니다. 회사는 신입을 뽑으면서, 그 첫 칸을 다른 회사에서 이미 밟고 온 사람을 고릅니다.
한국은행이 2025년 2월에 낸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은 그 결과를 숫자로 보여줍니다. 경력이 없는 사람이 한 달 안에 상용직(계약기간 1년 이상인 일자리)에 취업할 확률은 1.4퍼센트로, 경력자 2.7퍼센트의 절반입니다. 20대 상용직 고용률이 30대보다 17퍼센트포인트 낮은데, 그중 7퍼센트포인트가 경력직 채용이 늘어난 탓이라고 추정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인 구조
첫 칸이 줄면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무엇 | 숫자 | 어디서 |
|---|---|---|
|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 | 613만 원과 307만 원 |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2024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 (보도) |
|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긴 사람의 비율 | 11.8퍼센트 | 국가데이터처, 2024년 일자리이동통계 (보도) |
| 졸업 뒤 첫 취업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 | 11.2개월 |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 |
| 20~30대 '쉬었음' 인구 | 71만 7,000명 (2025년, 집계 이래 최대) | 국가데이터처, 2025년 연간 고용동향 (보도) |
| 고용센터에 등록된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 수 | 0.36개 (2025년, 2022년에는 0.67개) | 고용노동부, e-나라지표 고용센터 구인, 구직 및 취업현황 |
소득이 두 배 차이 나고,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큰 회사로 옮기는 길은 열 명 중 한 명에게 열립니다. 첫 직장이 거의 마지막 직장을 정합니다. 그러니 첫 칸을 아무 데서나 밟는 대신 좋은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개인에게는 계산이 맞는 선택입니다.
문제는 기다림에도 값이 있고 그 값이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올해 1월에 낸 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영향 평가에 따르면, 미취업 기간이 1년인 사람이 5년 뒤 상용직에 있을 확률은 66.1퍼센트이고 3년이면 56.2퍼센트로 내려갑니다. 미취업 기간이 1년 길어질 때마다 지금 받는 실질임금은 6.7퍼센트 낮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는 사람의 값이 내려갑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문 자체가 줄고 있습니다. 고용센터에 등록된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는 2022년 0.67개에서 2025년 0.36개로 3년 만에 절반 남짓이 됐습니다. 세 사람이 줄을 서면 일자리가 하나 남짓입니다.
첫 칸을 지우는 세 번째 손
회사가 첫 칸을 내놓고 구조가 기다림을 강요하는 동안, 세 번째 손이 그 칸을 지우고 있습니다. AI입니다.
한국은행의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연공편향(seniority-biased) 기술변화를 중심으로는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3년 동안 청년층 일자리가 21만 1,000개 줄었는데, 그중 20만 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사라졌다고 적습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 9,000개 늘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것을 연공편향 기술변화라고 부릅니다. AI가 대체하는 일이 초급 업무에 몰려 있어서, 기술이 젊은 쪽을 먼저 밀어낸다는 뜻입니다.
자료 취합, 회의록, 초안. 첫 칸을 이루던 일들이 바로 AI가 가장 먼저 잘하게 된 일들입니다. 회사가 신입에게 그 일을 시킨 이유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동안 사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면, 그 일이 없어질 때 확인할 자리도 같이 없어집니다.
정책 쪽 해법은 대체로 이 칸을 회사 안에 다시 만드는 쪽입니다. 연공 임금을 직무급으로 바꾸고, 학교와 회사가 같이 사람을 기르고,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채용을 조건으로 붙이자는 제안들입니다. 방향에 동의합니다. 다만 전부 10년 단위의 일입니다. 그 사이에 스무 살은 서른이 됩니다.
그래서 정부의 또 다른 답이 「모두의 창업」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는 6만 2,944명이 신청했고, 그중 5,000명이 창업활동자금 200만 원을 받고 시작합니다. 회사가 첫 칸을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만들라는 답을 국가가 낸 셈입니다.
그래서 창업인가
여기서 결론을 창업으로 내리고 싶어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두 번 창업했고 지금 동료들과 퍼플즈를 만들고 있으니, 그 결론이 저에게는 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절반만 맞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그 문도 이미 붐빕니다. 한국의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 비중은 2022년 기준 23.5퍼센트로 OECD 34개국 중 7위입니다. 회사로 들어가는 문이 좁다고 해서 그 옆의 문이 넓은 것은 아닙니다.
둘째, 회사를 세우는 일은 첫 칸이 아니라 열 번째 칸쯤에 있습니다. 창업은 만들어본 사람이 만들어본 것 위에서 하는 일입니다. 첫 칸도 없는 사람에게 열 번째 칸으로 뛰라는 말은, 사다리를 치우고 뛰어오르라는 말과 같습니다.
구조가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그보다 작고 앞에 있습니다. 회사가 신입에게 주던 것을 스스로 조달하는 일입니다. 회사가 첫 칸에서 주던 것은 셋이었습니다.
- 과제: 아직 아무도 일을 맡기지 않은 사람에게 회사가 대신 정해주던 일. 자료를 모아라, 초안을 써라.
- 도구: 회사의 시스템과 옆자리 선배. 혼자서는 못 하던 일을 하게 해주는 것.
- 기록: 그 일을 해냈다는 확인. 경력증명서의 한 줄.
이 셋 중 도구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첫 칸을 지운 것과 같은 방향에서 왔습니다.
같은 도구가 반대편에서 하는 일
브린욜프슨과 동료들이 상담원 5,179명을 관찰한 Generative AI at Work에서, AI 도구는 시간당 처리 건수를 평균 14퍼센트 올렸습니다. 그런데 경험이 적고 숙련도가 낮은 사람에게서는 34퍼센트였고, 경험 많은 숙련자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었습니다. 회사 안에서 초급 업무를 지운 그 AI가, 회사 밖에서는 경력 없는 사람을 가장 크게 도와줍니다.
제가 이것을 숫자로 먼저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코드를 한 줄도 못 짰습니다. 지금은 매주 서비스를 하나씩 만들어 만든 것 목록에 올립니다.
기록도 바뀔 수 있습니다. 경력증명서가 하던 일은 "이 사람이 해냈다는 것을 남이 확인했다"였습니다. 만든 것이 링크로 열리고, 소스가 공개되어 있고, 만드는 과정이 남아 있으면, 그 확인을 회사 이름 없이도 누구나 직접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동료들과 퍼플즈를 만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회사 이름과 연차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함께 일한 사람들의 기록으로 남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는 소개 문장보다 그쪽이 정확하다고 믿습니다.
첫 칸을 놓는 순서
회사가 주던 셋을 스스로 조달하는 순서입니다. 저는 이 순서로 첫 칸을 놓았습니다.
- 과제는 자기 불편에서 고릅니다. 크기 기준은 하나입니다. 하루 안에 첫 버전이 나오는가. 그보다 크면 쪼갭니다. 회사가 신입에게 준 첫 일도 그만큼 작았습니다.
- 도구는 AI에게 시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나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면서 배웁니다. 무엇을 시켰는지를 문장으로 적어두면 그것이 다음 번의 설계도가 됩니다. 코드랑 친해지기 위한 '터미널'을 처음 여는 순서는 여기에 적어두었습니다.
- 기록은 셋을 같이 남깁니다. 실행되는 링크, 소스, 걸린 시간. 하나만 있으면 주장이고 셋이 있으면 확인입니다.
- 반복합니다. 하나면 우연이고 열이면 실력입니다. 회사가 1~2년에 걸쳐 확인하던 것을, 매주 하나씩 쌓은 기록이 대신합니다.
다만 첫 칸을 놓았다고 바로 창업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불편을 해결하는 것과 남이 돈을 내는 문제를 반복해서 해결하는 것 사이에는 여러 칸이 있습니다. 각 칸에서 하는 일도 다르고, 그 일로 증명되는 것도 다릅니다.
| 칸 | 무엇을 하는가 | 이 칸에서 증명되는 것 |
|---|---|---|
| 1. 내 불편을 해결한다 | 하루 안에 만들 수 있는 작은 것을 하나 만든다 | 나는 시작할 수 있다 |
| 2. 끝까지 작동하게 만든다 | AI와 도구를 써서 실제로 실행되는 결과물을 만든다 | 나는 완성할 수 있다 |
| 3. 밖에 공개한다 | 링크, 소스, 과정, 걸린 시간을 남긴다 | 내 일은 확인할 수 있다 |
| 4. 타인의 문제를 해결한다 | 친구·동료·사용자가 실제로 겪는 문제를 하나 해결한다 | 나에게만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
| 5. 피드백을 받아 고친다 | 내가 좋다고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한다 | 요구를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다 |
| 6.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든다 | 역할을 나누고 소통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한다 | 조직 안에서도 일할 수 있다 |
| 7. 약속한 일을 약속한 때에 끝낸다 | 요청, 범위, 마감이 있는 일을 맡는다 |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
| 8. 누군가 돈을 내게 만든다 | 작은 외주든 판매든 첫 매출을 만든다 | 결과물에 시장가치가 있다 |
| 9. 같은 가치를 반복해서 만든다 | 한 번의 우연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문제를 반복해서 해결한다 | 사업이 될 가능성이 있다 |
| 10. 창업한다 | 사람·돈·제품을 조직해 그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한다 | 개인의 일을 조직의 일로 만든다 |
앞의 세 칸은 나 자신에게 시작하고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47칸은 다른
사람과 조직에 함께 일하고 일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89칸은 시장에 그
결과의 값을 증명합니다. 창업은 그 증명들을 모아 개인의 일을 조직의 일로 바꾸는
열 번째 칸입니다.
그러니 1번에 선 사람에게 10번부터 요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 칸에 필요한 증거는 바로 앞 칸에서 만듭니다. 이 사다리에서 나가는 문도 하나가 아닙니다. 공개한 결과물을 경력증명서 대신 회사에 낼 수 있고, 함께 일하고 약속을 지킨 기록으로 더 큰 일을 맡을 수도 있고, 시장가치를 반복해서 확인한 뒤 창업할 수도 있습니다. 창업은 결론이 아니라 여러 문 중 하나이고, 첫 칸 위에 서 있어야 고를 수 있는 문입니다.
결론은 첫 칸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결국 창업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제 답은 이렇습니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것은 회사가 아니라, 회사가 더는 주지 않는 첫 칸입니다. 「모두의 창업」의 200만 원도 회사를 세우는 돈이 아니라 첫 칸을 놓는 돈으로 읽으면 알맞습니다.
전에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적습니다. 시작한 것이 쌓여서 자격이 됩니다. 사다리도 같습니다. 첫 칸은 누가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밟으면 생기는 것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