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AX4

네가 뭔데 AX를 말하냐

자격은 지식이 희소하던 시대의 문지기였습니다. AI는 그 문지기를 먼저 낡게 만듭니다.

이 질문은 남이 묻기 전에 제가 먼저 해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누군데?" 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 그 질문은 곧 의미를 잃습니다. 둘, 그래도 묻는다면 저에게는 답이 있습니다. 서로 부딪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답이 어떻게 동시에 참일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자격은 문지기였습니다

자격은 단순히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희소하던 시대의 제도였습니다. 지식이 비싸고 실행이 어려웠던 시대에는 검증되지 않은 판단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 자체가 위험했습니다. 의사의 처방 한 장이 생명을, 변호사의 변론 하나가 자유를, 회계사의 장부 한 권이 재산을 좌우하는데, 그 판단이 맞는지 미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사회는 문 앞에 문지기를 세웠습니다. 학위, 면허, 연차, 소속. "너는 누군데?"라는 질문은 사실 "너는 어느 문을 통과했는데?"에 가까웠습니다.

이 제도는 오랫동안 꽤 잘 작동했습니다. 문지기가 지킨 것은 권위라기보다, 실행이 비싸던 시대의 안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이 낡고 있습니다

AI는 지식의 가격과 실행의 비용을 동시에 낮춥니다. 저는 코딩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주 온라인 서비스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만의 일이 아닙니다. 의사의 판독을, 변호사의 판례 검색을, 회계사의 장부 정리를 AI가 이미 나눠 하고 있습니다. 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과, 애초에 문 앞에 줄을 설 일이 없는 기계가 문 안쪽의 일을 해내기 시작하면, 문지기의 역할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격이 걸러내던 것은 결국 실행 능력의 희소성이었습니다. 그 희소성이 줄어들수록 "말할 자격"이라는 개념도 힘을 잃게 됩니다. 앞으로는 어느 문을 통과했는지보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 어떻게 결정했는지 같은 기록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 홈페이지가 이력서가 아니라 기록의 형태로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가장 위험할 때는, 남이 물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을 때입니다. "내가 뭐라고." 아직 기록이 없을수록 이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많은 것들이 시작되기도 전에 거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그 말은 옛 문지기의 언어입니다. 문이 낡으면 같이 낡아야 하는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답입니다. 그 질문은 곧 의미를 잃습니다.

그래도 굳이 묻는다면

두 번째 답입니다. 과거의 이력서로 답해보겠습니다.

저는 삼성SDS에서 인사팀 소속으로 3년 동안 인사데이터 DX 업무를 했습니다. 전환이라는 말이 보고서 안에 있을 때와 실제 조직에서 굴러갈 때가 얼마나 다른지, 계열사와 시스템과 사람이 얽힌 자리에서 전환이 정확히 어디에 걸려 넘어지는지를 안에서 봤습니다. 주재원 관리 플랫폼을 기획하면서는 다른 기업의 DX를 가까이서 돕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데이터가 쌓인 자리에서 등장한 것이 AX입니다. DX가 일을 데이터로 옮기는 단계였다면, AX는 그 데이터 위에서 사람의 역할을 다시 정하는 단계입니다.

지금은 정반대 끝에 있습니다. 창업을 했고, 처음부터 AI를 전제로 일하는 서비스(퍼플즈)를 동료들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환할 레거시가 없는 조직이 AI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매일 직접 겪고 있습니다.

가장 큰 조직의 전환과, 전환이 필요 없는 조직의 시작. 저는 AX의 양 끝을 모두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AX는 사람이 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AX를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AX에서 정말 바뀌는 것은 기술만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도구를 구매하는 것은 어느 회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것은 그 도구 앞에 선 사람의 역할을 다시 정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앞선 글에서 AX의 목적은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 결정은 알고리즘이 내려주지 않습니다. 사람과 조직이 내립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인사와 조직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AX는 기술 프로젝트라기보다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는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시스템은 반년이면 바뀌지만, 사람의 일하는 방식은 그보다 훨씬 느리고 훨씬 아프게 바뀐다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자격은 낡아도 관점은 남습니다

이제 두 답이 왜 함께 참인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낡는 것은 자격이지, 경험이 아닙니다. 자격은 문을 지키는 제도이기 때문에 문이 사라지면 함께 힘을 잃습니다. 반면 경험은 관점, 생각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너는 누군데?"라는 질문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뜻이 바뀔 것입니다. "어느 문을 통과했는데?"에서, "무엇을 경험했는데?"로.

저는 그 답을 여기에 계속 쌓일 글과, 직접 만든 것들이 대신 말하도록 축적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만들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가 먼저 도착해 있다면, 자격을 갖춘 다음에 시작하지 마세요. 순서가 반대입니다. 시작한 것이 쌓여서 자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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