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AX7

어려운 일도 대체됩니다

어려운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자리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익숙한 일을 내가 먼저 쉽게 만들고,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를 맡아야 합니다.

기술은 쉬운 일부터 대체하고,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오래 배운 일을 하는 사람은 조금 안심해도 됩니다. 그런데 자동화의 역사를 찾아보니 그 안심에 근거가 약했습니다. 지금 버튼 하나로 되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익힌 기술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일을 쉽게 만든 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사라진 일이 전부 어려웠다는 뜻은 아닙니다. 짧은 교육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오랜 훈련이 필요한 일도 대체됐습니다. 전문성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배우는 데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내 일을 내가 먼저 쉽게 만드는 쪽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일을 도구에 넘기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 풀지 못했던 문제를 맡아야 합니다. 전문성을 다음 일에 쓰는 연습을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버튼 뒤에는 누군가의 숙련이 있습니다

문서를 쓰다가 글꼴을 바꾸고 줄 간격을 맞춥니다. 지금은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금속 활자로 인쇄하던 시절에는 별도의 직업이었습니다. 인쇄소에는 원고에 맞는 금속 활자를 골라 한 줄씩 배열하고 페이지를 구성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글자를 정확히 읽는 능력에 손기술, 서체 지식, 디자인 감각이 함께 필요했습니다.

직접 인쇄소에서 활자를 배열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 쓴 The Compositor in London: The Rise and Fall of a Labour Aristocracy에는 1942년에 일을 시작해 7년의 견습을 거쳤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이 일했던 인쇄소를 다시 찾았을 때 그 일을 하던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긴 훈련을 거친 전문직도 인쇄할 페이지를 만드는 기술이 바뀌는 동안 자리를 잃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일을 쉽게 하는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쉬운 일을 어렵게 배워서가 아닙니다. 활자를 고르고 배열하고 수정하는 과정의 상당 부분이 소프트웨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좋은 지면을 판단하는 눈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문서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금속 활자를 다루는 법까지 배울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버튼이 간단한 것과 그 뒤에서 처리하는 일이 간단한 것은 다릅니다. 지금의 편리함으로 과거의 노동을 평가하면, 그 사이에 기술이 넘겨받은 어려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남습니다. 내 일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있고, 상황마다 달라지는 요령이 있으니 기계가 배우기 어렵지 않을까. 실제로 그것은 자동화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다만 기술에는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말고도 길이 있습니다.

항구가 그 길을 보여줍니다. 스미스소니언의 Transforming the Waterfront는 규격화된 컨테이너와 배·트럭·기차 사이의 운송 체계가 하역에 필요한 인력을 크게 줄인 과정을 설명합니다. 기계에 온갖 짐을 다루는 사람의 요령을 하나씩 가르치는 대신, 짐을 같은 규격의 상자에 담아 옮기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기술이 바꾼 대상입니다. 사람의 손동작만 바꾼 것이 아니라 손이 다뤄야 하는 환경을 바꿨습니다. 제각각인 짐을 다루던 숙련의 일부가 규격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사람을 흉내 내는 일이 어려우면, 그 사람의 방식이 필요하지 않도록 일을 다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 글에 쓴 회사의 선택도 그랬습니다. 오래된 기능을 한 사람만 고칠 수 있자 회사는 그분의 노하우를 전부 넘겨받는 대신 기능을 통째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기존 기능을 고치는 일은 끝까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회사는 그 어려운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없앴습니다.

일이 남는 것과 내 자리가 남는 것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기술이 들어올 때마다 직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직업에는 여러 일이 묶여 있습니다. 은행 창구에서도 돈만 세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사정을 듣고, 거래를 확인하고, 예외를 처리합니다. 일부를 기계가 맡아도 나머지는 남을 수 있습니다.

Why Are There Still So Many Jobs? The History and Future of Workplace Automation은 ATM 보급기에 미국 은행의 지점당 창구 인력은 줄었지만 지점이 늘면서 고용 감소를 상쇄한 사례를 다룹니다. 같은 양의 일을 하는 데 사람이 덜 필요해져도, 전체 일의 양이 늘면 사람을 더 쓸 수 있습니다. 기술의 성능만 보고 고용의 결론까지 낼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산업 전체에 새 일이 생기는 것과 기존 일을 하던 사람이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활자를 다루던 사람이 모두 디자이너가 되는 것도, 기능을 고치던 사람이 새 기능을 만드는 자리를 그대로 맡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능력과 자리가 바뀌는 사이에 누군가는 소득을 잃고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자동화할 일을 정할 때는 그 일을 하던 사람이 다음에 맡을 문제까지 같이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채용 보고서의 자료 취합을 자동화한다면, 담당자가 아낀 시간에 면접 전 지원자가 이탈하는 원인을 찾아보도록 일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사는 그 사람이 지원자에게 이유를 묻고, 일정 안내 방식을 고쳐볼 시간과 권한을 줘야 합니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지시를 실제로 맡을 과제로 바꾸는 데까지가 자동화 계획이어야 합니다.

AI도 내가 배운 시간을 그대로 거치지 않습니다

AI를 볼 때는 한 가지를 더 고쳐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자동화를 “사람의 지식을 규칙으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하더라도, AI가 모든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는 모든 판단을 사람이 먼저 규칙으로 정리하지 않아도, AI는 많은 사례에서 배운 패턴으로 초안을 만듭니다.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 결과가 왜 맞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능력입니다.

그러니 내가 설명하기 어려운 요령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AI가 내가 배운 순서를 그대로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가 받아들일 만한 결과를 내는 다른 길이 생기면 됩니다. 그 길이 매번 맞는지, 잘못된 결과를 알아보는 데 얼마나 드는지가 실제 도입의 조건이 됩니다.

AI를 쓴 컨설턴트들의 성과를 살핀 Navigating the Jagged Technological Frontier에서도 AI가 잘하는 업무와 그렇지 못한 업무의 경계는 고르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를 저는 직무 이름으로 안전한 영역을 나누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같은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자료를 정리하는 일, 원인을 짚는 일, 결론을 확인하는 일을 따로 봐야 합니다.

여기서 쌓아온 전문성을 쓸 수 있습니다. 직접 해본 일이라야 AI가 내놓은 결과에서 무엇이 빠졌고 어디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잘 아는 일 하나에 도구를 써보고, 수정하는 시간까지 합쳐 실제로 일이 줄었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 경험은 결과를 만드는 기술에 더해, 도구를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내 일을 내가 먼저 쉽게 만듭니다

이 글의 답은 지금 하는 일을 더 어렵게, 더 오래 배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잘 아는 일부터 더 적은 시간에 해낼 방법을 만들고, 그 여유로 맡을 문제를 넓히자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한꺼번에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주에 반복한 일 하나면 됩니다.

  1. 반복하는 일 하나를 도구에 맡겨봅니다. 매주 만드는 보고서라면 자료 취합부터 시작합니다. 지금 절차를 그대로 옮기기 전에, 입력 양식을 통일하면 중간 작업을 줄일 수 있는지도 봅니다. 컨테이너가 바꾼 것도 일의 환경이었습니다.
  2. 내가 하던 결과와 비교하고, 고칠 기준을 적습니다. 빠진 항목과 중복된 숫자를 확인하고, 다음에도 같은 오류를 찾을 수 있게 남깁니다. 만드는 시간에 검토와 수정 시간을 더해도 줄었을 때 그 일을 넘깁니다.
  3. 아낀 시간을 쓸 문제 하나를 정하고 시작합니다. 보고서가 빨리 나왔다면 거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보고서에 매번 나타나지만 손대지 못했던 문제를 고릅니다. 앞의 채용 사례라면 지원자의 이탈 이유를 확인하고 안내 방식을 고친 뒤, 실제로 이탈이 줄었는지까지 확인하는 일을 맡습니다.

개인이 혼자 업무를 바꿀 권한이 없다면, 이 셋을 한 장의 제안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자료 취합에 쓰던 시간을 이만큼 줄였습니다. 그 시간에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습니다.” 관리자는 그 제안을 받았을 때 기존 일을 더 얹기 전에, 새 문제를 맡아볼 시간을 확보해줘야 합니다. 다음 역할은 그 일을 실제로 해볼 기회에서 시작됩니다.

인쇄소에서 보낸 7년이 가벼운 시간이어서 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시간을 들여 익힌 방식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전문성도 같은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익숙한 일을 계속 잘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잘 아는 일을 먼저 쉽게 만들고, 그 능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넓혀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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