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인 사람은 회사가 만듭니다
X이론과 Y이론의 차이는 사람을 보는 리더의 관점에 있습니다.
채용 면접에서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주도적인 사람"입니다. 저도 인사 업무를 하는 10년 동안 그 질문을 수없이 들었고, 던졌습니다. 그런데 X이론과 Y이론을 만든 분은 사람을 X형과 Y형으로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가 나눈 것은 동료를 바라보는 리더의 관점이고, 그 뒤의 연구들이 보여준 것은 그 관점이 사람을 실제로 그렇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주도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는 시키는 일만 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스스로 일을 찾습니다. 그 자리를 가르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목표를 누가 정하는지, 어디까지가 내 일인지, 상사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입니다.
맥그리거가 실제로 쓴 것
1960년에 나온 The Human Side of Enterprise에서 X이론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본래 일을 싫어하고, 할 수만 있으면 피한다."
Y이론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일에 몸과 마음의 노력을 쓰는 것은 놀이나 휴식만큼 자연스럽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헌신하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스스로 방향을 잡고 스스로를 통제한다."고 봅니다.
두 묶음은 두 종류의 인간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리더가 사람에 대해 어느 쪽 관점으로 조직을 만드는가를 묘사한 것입니다. 맥그리거의 논리는 가정이 먼저 오고, 그 가정에 맞는 제도가 지어지고, 그 제도가 사람을 가정대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통제를 전제로 지은 회사에서 사람들은 통제받을 때만 움직이고, 리더는 "역시 사람은 시켜야 한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한 가지 더 자주 오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Y이론은 부드러운 관리가 아닙니다. 맥그리거는 X이론 위에서도 강한 방식과 부드러운 방식이 둘 다 가능하다고 썼습니다. 통제하고 벌하는 것도, 복지와 보상으로 달래는 것도 사람이 일을 싫어한다는 같은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통제를 조금 풀고 복지를 늘렸다고 Y가 되지는 않습니다. Y이론이 느슨한 것은 방법뿐입니다. 목표와 결과에는 X보다 엄격합니다.
기대가 사람을 만듭니다
기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측정된 사실입니다.
브라이언 맥냇이 2000년에 낸 메타분석 Ancient Pygmalion Joins Contemporary Management는 관리자의 기대를 인위적으로 높인 현장 실험 17건, 2,874명을 모았습니다. 상사가 부하에게 높은 기대를 갖게 됐을 때 부하의 성과는 표준편차 1.13만큼 올랐습니다. 효과는 군대에서, 남성에게서, 처음에 기대가 낮았던 사람에게서 더 컸습니다. 조건이 붙는 결과이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사람을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과가 바뀝니다.
주도성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2018년의 메타분석 Leader autonomy support in the workplace는 72개 연구, 32,870명을 모아 리더가 부하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정도를 봤습니다. 리더의 자율성 지지는 부하의 자율적 동기와 강하게 이어졌고, 통제된 동기와는 관계가 없었으며, 심리적 고통을 낮췄습니다. 스스로 일을 찾는 행동은 타고난 특성이라기보다 리더가 만든 조건에서 나오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면접에서 주도적인 사람을 찾는 회사는 순서를 거꾸로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도적인 사람이 없어서 회사가 통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통제로 운영되어 주도적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앞 편에 적었듯 한국에서는 문제를 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애초에 드뭅니다. 뽑아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Y이론은 "알아서 해"가 아닙니다
여기서 반대쪽 오해가 나옵니다. 조건이 사람을 만든다니 통제를 걷어내고 맡기면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론의 창시자는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적은 경영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경영의 핵심 과제는 사람들이 조직의 목표를 향해 스스로 노력을 쏟는 것이 곧 자기 목표를 가장 잘 이루는 길이 되도록, 조직의 조건과 운영 방식을 배열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통합과 자기 통제에 의한 경영이라 불렀습니다.
목표는 함께 정하고, 방법은 맡깁니다. 이 순서가 맥그리거가 말한 Y입니다. 목표 없이 방법만 맡기는 것은 자율이 아니라 모호성입니다. 그리고 제가 겪은 한국 조직의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직무가 무엇인지 적혀 있지 않은 채로 "알아서 해보라"와 "시킨 것만 하라"가 한명의 리더에게서 같이 나옵니다. 어디까지가 내 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받은 재량은 위임이 아니라 책임의 전가입니다. 사람들이 방어적으로 변하는 것은 그 뒤의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맥그리거도 리더가 되기를 피하려 했습니다
맥그리거는 이 이론을 책상에서만 쓴 사람이 아닙니다. 1948년부터 6년 동안 앤티오크 칼리지 총장을 지냈고, 1954년 5월 물러나며 학교 소식지에 쓴 「On Leadership」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리더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렸다. 리더는 조직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듯이 권한의 행사도 피할 수 없다." 이 대목은 Management, Authority, and Control on the Human Side of Enterprise에 원문 그대로 인용돼 있습니다.
Y이론을 만든 사람이 조언자로만 남으려다 실패한 것입니다. 이 실패가 Y이론의 뜻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Y이론이 그리는 리더는 결정을 안 하는 리더가 아닙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 결정의 무게를 지는 리더입니다. 권한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써야 한다는 사실 사이의 양가감정은 회사를 시작하는 사람 뿐 아니라, 이 이론을 만든 사람도 겪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도적인 사람을 찾는 대신, 사람이 주도하게 되는 자리를 짓는 쪽으로 갑니다. 할 일은 다섯 가지입니다.
- 업무 유형을 묻지 않고 자리를 준다: "주도적입니까"라고 묻는 대신, 첫 달 안에 스스로 정한 목표 하나를 끝까지 가보는 자리를 만듭니다. 문제를 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판정이 아니라 첫 경험입니다.
- 목표는 같이 정하고 방법은 묻지 않는다: 목표 없이 재량만 주는 것은 방임입니다. 목표를 정하는 회의는 길게, 방법을 정하는 회의는 없애는 쪽으로 갑니다.
- 경계를 적는다: "온보딩을 맡아주세요"가 아니라 "첫 주 일정표를 만들고 첫날 안내를 진행합니다. 장비와 계정은 총무가 합니다. 일정표 양식은 바꿔도 됩니다"처럼 적습니다. 어디서 끝나는지, 무엇이 남의 일인지, 무엇을 바꿔도 되는지. 이 셋이 문장에 있어야 재량이 위임이 됩니다. 경계 없는 재량은 무한 책임이고, 무한 책임 앞에서 사람은 방어적이 됩니다.
- 기대는 말이 아니라 장면으로 전한다: "믿고 맡깁니다"라고 말하면서 보고서를 받아 리더가 다 고치면, 사람은 말이 아니라 그 장면을 믿습니다. 조언할 곳은 표시하되, 본인 손으로 고치게 하는 것, 결국 그 멤버가 직접 쓴 문장이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랫 사람의 반대 의견에 기획이 바뀌는 것도 같은 장면입니다. 그 이야기기는 한국은 협업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에 적었습니다.
- 첫 문제는 작게: 프레임을 통째로 맡기면 무한 책임의 불안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2시간이면 끝까지 가볼 수 있는 크기의 문제부터 냅니다.
다섯 가지 중 어느 것도 사람을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전부 사람이 주도하게 되는 자리를 짓는 일입니다. 맥그리거가 60년 전에 쓴 것도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리더의 일은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조건을 배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