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조직과 사람7

맡겼는데 결국 내가 다시 하는 이유

넘긴 일이 "못하겠어요"로 돌아오거나 성에 안 차 다시 손대게 되는 원인은 대개 받는 쪽이 아닌 넘기는 쪽에 있습니다.

위임한 일이 실패로 돌아오는 원인은 대부분 실무자가 아닌 리더에게 있습니다. 여전히 통제권을 쥐려 하고, 내 방식만 정답이라 믿으며, 완벽한 신뢰가 전제되어야만 일을 맡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팀장이 된 동료가 위임에 실패한 뒤 결국 모든 일을 다시 떠맡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아직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거나 '내가 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조직 내에서도 누군가는 성공적으로 일을 위임합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위임이 실패하는 세 가지 이유는 모두 '넘기는 사람' 쪽에 있으며, 이제 막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물론 실무자의 역량 부족이 원인일 때도 있지만, 이는 리더 측의 원인을 모두 걷어낸 후에야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일은 넘겼는데 다음 차례는 아직 나에게 있습니다

1974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Management Time: Who’s Got the Monkey?는 일을 원숭이에 비유합니다. 여기서 원숭이는 일 자체가 아닙니다. 그 일에서 다음에 움직일 차례입니다. 원숭이는 늘 그 차례를 가진 사람의 등에 앉아 있습니다.

팀원이 "이 부분이 막혔는데요"라고 가져옵니다. 팀장이 "생각해보고 알려줄게"라고 답합니다. 그 순간 일의 담당자는 그대로 팀원인데, 다음에 움직일 사람은 팀장으로 바뀝니다. 팀원은 답을 기다리며 멈추고, 팀장은 팀원의 일을 대신 고민하게 됩니다.

"못하겠어요"는 대개 이 원숭이가 돌아오는 소리입니다. 팀원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일은 받았는데 그 일을 끝까지 가져가는 데 필요한 것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 자기가 정해도 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골라야 하는지, 막히면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이 셋이 없으면 작은 갈림길마다 물어볼 수밖에 없고, 물어보는 순간 차례는 다시 팀장에게 넘어옵니다.

그 글은 팀원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다섯 단계로 나눕니다. 시킬 때까지 기다린다, 무엇을 할지 묻는다, 안을 만들어 승인받고 실행한다, 실행하고 바로 알린다, 실행하고 정기적으로 알린다. 그리고 앞의 둘은 금지하라고 합니다. "못하겠어요"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 말이 왔을 때 답을 주면 원숭이를 받는 것이고, "어디까지 해봤고 어느 쪽을 고르면 되는지 가져와 주세요"라고 돌려보내면 세 번째 단계로 올라갑니다. 넘길 때 어느 단계로 넘기는지를 먼저 정하면 돌아오는 원숭이가 줄어듭니다.

내 손이 닿은 것만 좋아 보입니다

돌아온 결과물이 성에 안 차는 문제는 조금 더 불편한 곳에서 시작합니다. 보는 쪽입니다.

1998년 연구 Faith in Supervision and the Self-Enhancement Bias: Two Psychological Reasons Why Managers Don’t Empower Workers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결과물을 놓고도 감독을 더 많이 받고 만들었다고 들으면 품질을 더 높게 매겼고, 자기가 그 감독에 관여했다고 믿을 때 더 높게 매겼습니다. 내 손이 닿지 않은 결과는 같은 것이라도 덜 좋아 보입니다. 맡긴 일이 성에 안 차는 이유의 절반은 결과가 아니라 내 손이 안 닿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넘길 때 이미 정해집니다. 1999년 연구 The Curse of Expertise에서 전문가일수록 초보자가 그 일에 얼마나 걸릴지 더 크게 틀렸고, 틀린다는 것을 알려줘도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2001년 후속 연구 Bothered by Abstraction에서는 전문가가 초보자에게 일을 설명할 때 구체적인 말보다 추상적인 말을 더 많이 썼고, 같은 일을 할 때는 전문가보다 초보를 갓 벗어난 사람이 가르친 쪽이 더 잘했습니다.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어떤 단계를 거쳐 그 일을 하는지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중간을 빼고 넘기고, 중간이 빠진 채로 돌아온 결과를 보고 실망합니다.

이 둘이 붙으면 한 바퀴가 됩니다. 중간을 빼고 넘긴다. 빈 결과가 돌아온다. 역시 내가 해야겠다고 결론 내린다. 이 바퀴 안에서 팀원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했는데, 팀장의 기억에는 맡겨봤는데 안 됐다로 남습니다.

신뢰는 맡기기 전에 오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이유가 가장 깊습니다. 처음 맡기는 사람은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그 사람을 믿을 만큼 겪어보지 않았다. 신뢰가 생기면 그때 맡기겠다.

1995년 연구 An Integrative Model of Organizational Trust는 신뢰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상대를 지켜보거나 통제할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상대가 나에게 중요한 일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기대어 기꺼이 취약해지려는 의지. 신뢰는 맡기기 전에 갖춰두는 조건이 아니라 맡기는 행동 그 자체 안에 있습니다. 지켜보지 않고 넘기는 것이 곧 신뢰이고, 넘겨서 돌아온 것이 다음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회사 또는 사회에서 같이 일해본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 동료들을 믿는 것은 성격을 알아서가 아니라, 맡겨보고 돌아온 것을 본 시간이 쌓여서입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만 있습니다. 새로 팀장이 된 동료에게 옮겨줄 수가 없습니다. 그 동료가 어려워하는 것은 성격이 아니라 그 이력이 아직 없어서이고, 그 이력은 맡겨야만 생깁니다. 먼저 생기기를 기다리면 영영 생기지 않습니다.

원숭이 글의 해설도 같은 곳에서 끝납니다. 팀원이 실패를 두려워하면 문제를 계속 팀장에게 가져오니,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라고 합니다. 맡기는 쪽이 먼저 취약해져야 받는 쪽이 원숭이를 들고 갑니다.

잘하던 사람이 팀장이 되면 더 어렵습니다

세 가지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실무를 잘하던 사람이 팀장이 됐을 때 가장 세게 옵니다. 기준이 높아서 내 손이 안 닿은 것이 더 부족해 보이고, 잘해서 초보의 시간을 더 못 재고, 정말로 자기가 하는 게 빠르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대개 그런 사람을 팀장으로 올립니다. 2019년 연구 Promotions and the Peter Principle은 미국 214개 회사의 영업 직원 자료에서 실적이 두 배인 사람이 승진할 확률이 14.3% 높았고, 그런데 승진 전 실적이 두 배 높은 팀장 밑에서는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적이 7.5% 낮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실무를 잘한 것과 남이 잘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고, 회사는 앞의 것으로 뒤의 자리를 채웁니다.

그래서 처음 맡기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그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자리의 구조입니다. 잘해서 올라왔고, 잘하기 때문에 맡기기 어렵습니다. 지난 글에 AI 여럿에게 일을 나눠 맡기는 구조가 여러 사람에게 맡기는 구조와 닮았다고 썼습니다. 그 구조가 사람 쪽에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AI에게 맡길 때는 신뢰 대신 기준이 쌓입니다

넘기는 방법은 사람이나 AI나 같습니다. 무엇을 위한 일인지, 어디까지 정해도 되는지, 언제 알릴지. 다른 것은 그다음입니다. 사람에게는 맡길수록 신뢰가 쌓이는데, AI에게는 잘 쌓이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AI는 매번 새로 시작하고, 막혀도 "못하겠어요"라고 하지 않고 다 된 것처럼 돌려줍니다. 결과를 같이 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확인을 줄일 수가 없습니다.

대신 쌓이는 곳이 다릅니다. 한 번 틀린 것을 기준으로 적어두고, 다시 틀릴 만한 것은 기계가 잡게 해둡니다. 사람에게는 맡긴 이력이 신뢰가 되고, AI에게는 적어둔 기준이 신뢰를 대신합니다.

넘길 때 세 줄, 돌아올 때 한 질문

맡긴 일이 돌아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넘기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할 것은 셋입니다.

  1. 넘길 때 세 줄을 적습니다. 이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디까지 스스로 정해도 되는지, 막히거나 끝나면 언제 어떻게 알릴지. 셋째 줄이 위의 다섯 단계 가운데 어느 단계로 넘기는지를 정합니다.
  2. "못하겠어요"가 오면 답 대신 질문을 돌려보냅니다. "어디까지 해봤고, 어느 쪽을 고르면 되는지 가져와 주세요." 원숭이를 다시 팀원의 등에 올리는 문장입니다.
  3. 돌아온 결과를 볼 때 내가 했으면 어땠을까로 보지 않습니다. 넘길 때 적은 세 줄에 맞는지로 봅니다. 맞으면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냅니다. 그 한 번이 신뢰의 첫 이력이 됩니다.

맡길 만해서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맡겨봐야 맡길 만한지 알게 됩니다.

댓글

로그인 없이 남길 수 있어요. 쓴 브라우저에서만 지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