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에서 어려운 것은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만드는 일은 쉬워졌습니다. 같이 할 사람, 고객에게 묻는 법, 서류의 중요성 셋 다 회사 안에서 미리 겪을 수 있습니다.
창업을 결심한 다음 날부터 회사가 다르게 보입니다. 어제까지 그냥 다니던 곳이 월급 받으며 배우는 곳이 됩니다. 남은 시간은 아이템을 결정하고, 만들 것을 만들고, 나갈 날을 세는 데 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첫 창업은 혼자 시작해서 8개월 만에 접었습니다. 만드는 것은 빨랐습니다. 어려운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이 글의 결론은 한 문장입니다. 창업에서 어려운 것은 만드는 일이 아니고, 그 어려운 것들은 대부분 회사 안에서 미리 겪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뒤의 회사는 이전과 다른 곳이 됩니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은 회사에서 챙길 것만 챙겨 나가라는 글이 아닙니다. 그런 태도를 오히려 경계합니다. 아래에 적는 연습은 회사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같이 일한 사람은 나간 뒤에도 남습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결심한 날부터 나가는 날까지의 시간을 무엇에 쓸 것인가입니다. 그 시간에 연습할 것 셋과, 오늘 할 것 셋을 적습니다.
어려운 것은 만드는 일 밖에 있습니다
폴 그레이엄이 2006년에 쓴 The 18 Mistakes That Kill Startups는 스타트업을 죽이는 실수 열여덟 가지를 셉니다. 그중 기술이 문제인 항목은 둘뿐입니다. 나쁜 프로그래머를 뽑는 것과 잘못된 기반 기술을 고르는 것. 나머지 열여섯은 혼자 시작하는 것, 고집, 너무 늦거나 이른 출시, 특정한 사용자를 정하지 않은 것, 손에 흙 묻히기 싫어하는 것, 창업자끼리 싸우는 것 같은 사람과 고객 쪽 이야기입니다. 그레이엄은 열여덟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글이 나온 것이 20년 전입니다. 그 사이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쉬워졌습니다. 전에 쓴 글에서 실행비용이 저렴해질수록 목표가 비싸진다고 적었는데, 창업에서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집니다.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남는 어려움은 전부 만드는 일 밖으로 몰립니다.
그런데 결심한 사람이 준비하는 것은 대부분 만드는 쪽입니다. 아이템, 기술, 화면. 만드는 일은 혼자 밤에 할 수 있고 결과가 눈에 보이니까요. 반대로 사람을 고르는 일, 고객에게 묻는 일, 서류를 읽는 일은 결과가 잘 안 보이고 미루기 쉽습니다. 그 셋이 제가 마주친 어려움이고, 셋 다 회사 안에 연습장이 있었습니다.
같이 할 사람은 회사에서 찾았습니다
첫 창업은 혼자였습니다. 혼자라서 결정이 빨랐고 만드는 것도 빨랐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틀렸다고 말해줄 사람이 옆에 없었으니까요. 8개월 만에 접었습니다.
그레이엄의 열여덟 가지 실수 중 첫 번째가 혼자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혼자 시작한 것 자체를 불신임 투표라고 부릅니다. 친구 중 누구도 같이 하자고 설득하지 못했다는 뜻이라서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조금 억울했는데, 지금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하자고 설득하는 일과 첫 고객을 설득하는 일은 같은 종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창업은 동료들과 시작했습니다. 지금 넷이서 퍼플즈를 만들고 있는데, 이 동료들은 창업 행사나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회사 또는 사회에서 같이 일해본 사람들입니다. 채용을 운영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면접 한 시간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습니다. 급할 때 어떻게 하는지, 의견이 부딪힐 때 어떻게 하는지, 자기 결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인지는 같이 일해봐야 압니다. 회사는 그것을 이미 몇 년째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결심한 뒤의 회사에서 가장 먼저 볼 것은 아이템이 아니라 옆사람입니다. 볼 것은 셋입니다. 일이 틀어졌을 때 누구를 탓하는가. 내 의견에 반대해본 적이 있는가. 그 반대로 내 결론이 실제로 바뀐 적이 있는가.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합니다. 전에 쓴 글에 적었듯 제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지금 동료들이 의견을 계속 내는 이유는 내면 실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 왕복이 회사 안에서 한 번이라도 돈 사람이 같이 할 사람입니다.
고객에게 묻는 법은 옆 부서에서 연습합니다
첫 창업 때 저는 고객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묻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겪은 불편이었으니까요. 8개월 동안 만드는 데 집중했고, 쓰는 사람에게 제대로 물어본 것은 늦었습니다. 물어봤을 때는 이미 방향이 굳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순서를 바꿨습니다. 처음에 만들던 서비스는 지금의 퍼플즈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동료들의 의견을 듣고 바꾸고, 쓰는 사람에게 묻고 또 바꾸면서 지금 모습이 됐습니다. 이 순서가 8개월과 지금을 갈랐습니다.
묻는 데는 요령이 있습니다. 롭 피츠패트릭이 The Mom Test에서 정리한 규칙은 셋입니다.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상대의 삶을 묻는다. 미래의 의견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묻는다. 내가 덜 말하고 상대가 더 말하게 한다. 책 제목은 어머니에게 물어도 사실이 나오는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좋은 말을 하는데, 그 좋은 말이 창업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됩니다.
| 이렇게 물으면 좋은 말만 듣습니다 | 이렇게 물으면 사실을 듣습니다 |
|---|---|
| 이런 서비스 있으면 쓰실 건가요? | 지난주에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
| 이 아이디어 어때요? | 그 문제로 마지막으로 곤란했던 게 언제예요? 그때 뭘 하셨어요? |
| 얼마까지 내실 수 있어요? | 지금 그 문제에 돈이나 시간을 얼마나 쓰고 계세요? |
| 어떤 기능이 있으면 좋겠어요? | 지금 쓰는 방법에서 제일 귀찮은 순간이 언제예요? |
이 연습을 회사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옆 부서 동료와 점심을 먹으면서 그 사람의 일을 묻는 것입니다. 해결책을 제안하지 않고, 지난주에 무엇 때문에 늦게까지 남았는지, 그때 무엇을 했는지만 묻습니다. 회사에는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수십 명 있고, 그 사람들은 이미 나에게 시간을 내줄 이유가 있습니다. 밖에서 낯선 사람 열 명을 붙잡는 것보다 훨씬 쉬운 연습장입니다. 그리고 이 연습은 창업을 안 해도 남습니다. 옆 부서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아는 사람은 회사 안에서도 기회가 많습니다.
계약서를 읽는 눈은 회사에서 생깁니다
세 번째는 겪고 나서야 아는 종류의 어려움입니다. 시작은 입사할 때 서명한 서류 뭉치입니다. 그 안에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퇴직한 뒤 같은 업종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약정과, 재직 중에 만든 발명은 회사 것이라는 규정입니다. 서명할 때 읽는 사람은 드물고, 창업을 결심하고 나서야 그 서류가 떠오릅니다.
앞의 약정은 서명했다고 전부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2010년 판결에서 회사에 지킬 만한 이익이 있는지, 그 사람의 퇴직 전 지위가 무엇이었는지, 금지하는 기간과 지역과 업종이 지나치지 않은지, 그 대가로 받은 것이 있는지, 퇴직 경위는 어땠는지를 함께 본다고 정리했습니다. 직업을 고를 자유를 지나치게 막으면 무효입니다. 다만 무효를 법정에서 확인받는 데는 시간과 돈이 듭니다.
뒤의 규정은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2024년 8월부터 시행된 발명진흥법 개정으로, 회사에 미리 승계 규정이 있으면 직무와 관련된 발명은 완성되는 순간 회사 것이 됩니다. 회사가 따로 통지하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창업 아이템이 지금 하는 일과 닿아 있다면 회사 장비와 계정과 근무 시간 밖에서 만들고, 지금 직무와 다른 것임을 처음부터 분리해두어야 합니다. 회사에 따라서는 나가는 문도 문서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제도는 분사한 뒤 실패해도 5년 안에 돌아올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조항은 시작일 뿐입니다. 창업은 서류에 서명하는 쪽에서 서류를 쓰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입니다. 동료와 지분을 나눌 때, 첫 고객과 일을 시작할 때, 첫 직원을 뽑을 때, 투자를 받을 때. 전부 서류가 먼저 옵니다. 그리고 서류는 사이가 좋을 때 씁니다. 사이가 나빠졌을 때 읽으려고 쓰는 것이라서, 좋을 때 안 써두면 나빠졌을 때는 쓸 수 없습니다. 그레이엄의 열여덟 가지 실수 중 열일곱 번째가 창업자끼리 싸우는 것인데, 그 싸움을 막는 것은 좋은 사이가 아니라 좋을 때 써둔 문서입니다.
회사는 그 서류들이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회사는 사람 하나를 들일 때도 근로계약서부터 쓰고, 고객사와 일을 시작할 때도, 협력사에 일을 맡길 때도 계약서부터 씁니다. 조항마다 누군가 한 번 겪은 일이 들어 있습니다. 내 일에 걸린 계약서를 하나 골라 읽고, 이해가 안 되는 조항이 왜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나가고 나서 읽는 것과 있을 때 읽는 것은 다릅니다. 있을 때는 물어볼 사람이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결심한 뒤의 회사는 연습장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만드는 일은 쉬워졌습니다. 창업에서 남은 어려움은 같이 할 사람을 고르는 일, 고객에게 묻는 일, 서류를 읽고 쓰는 일이고, 셋 다 회사 안에 연습장이 있습니다. 옆에 몇 년째 같이 일한 사람이 있고, 옆 부서에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회사 곳곳에 실제로 작동하는 계약서가 있습니다. 밖에서는 이 셋을 돈과 시간을 들여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심한 뒤의 회사는 그냥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월급을 받으면서 창업의 어려운 부분을 미리 겪어보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연습은 창업을 결국 안 하더라도 남습니다. 같이 일할 사람을 고르는 눈, 남의 일을 묻는 법, 계약서를 읽는 눈. 셋 다 회사 안에서 다음 역할을 맡을 때 그대로 쓰입니다. 전에 쓴 글에서 창업은 열 번째 칸이라고 적었는데, 그 앞의 칸들 중 여럿이 회사 안에 있습니다.
오늘 할 것은 셋입니다.
- 옆사람 중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 사람 앞에서 내 결론을 바꾼 적이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없다면 아직 같이 할 사람을 못 본 것이고, 있다면 그 사람이 후보입니다.
- 이번 주에 옆 부서 사람과 점심을 먹습니다. 내 아이디어는 꺼내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무엇 때문에 늦게까지 남았는지만 묻습니다.
- 서명한 서류와 내 일에 걸린 계약서를 하나씩 읽습니다. 인사팀에 근로계약서와 서약서 사본을 요청해 경업금지와 직무발명 조항을 찾고, 업무 계약서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조항 하나를 골라 왜 있는지 물어봅니다.
셋을 하고 나면 회사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나가야 할 곳이 아니라, 나가기 전에 배울 수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