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일과 성장9분

AI로 할 수 있는 일은 늘었는데, 왜 시작은 어려울까요

AI가 실행을 도와줘도 주도성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작은 일을 정하고, 해보고, 결과에 따라 바꿔본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 경험은 개인이 연습하고 조직이 허용할 때 쌓입니다.

AI와 대화한 기록에는 해볼 만한 일이 가득한데, 지난주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조사도 했고 계획도 세웠습니다. 예전 같으면 며칠 걸렸을 준비를 한 시간 만에 끝냈는데, 첫 행동은 여전히 내일로 밀립니다. 실행을 도와줄 도구가 생긴 것과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그 사이를 잇는 주도성은 어디서 생길까요.

안드레이 카르파시는 2025년 2월 X에 올린 글에서 지능보다 주도성, 즉 agency가 더 강력하고 더 희소하다고 썼습니다. 게리 탄도 같은 시기의 글에서 지능을 필요할 때 가져다 쓸 수 있게 됐으니 주도성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이 방향에 공감합니다. 다만 이 말을 읽고 "앞으로는 주도적인 사람을 뽑아야겠다"에서 멈추면, 이미 주도적인 사람이 좋은 도구를 하나 더 얻었다는 이야기만 남습니다. 지금 시작이 어려운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주도성이 중요하다는 선언보다, 그것을 어떻게 내 일에서 길러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주도성을 여기서는 스스로 바꿀 일을 정하고, 행동한 뒤, 결과를 보고 다음 행동을 고치는 힘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회의에서 말을 먼저 꺼내는 성격과는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반복되는 문제를 발견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작은 변경을 끝까지 확인하는 사람에게서도 드러납니다.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도움을 구하거나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결정을 요청하는 것도 일을 움직이는 행동입니다.

고객 문의를 처리하는 팀을 가정해보겠습니다. 배송 안내가 모호해서 같은 질문이 계속 들어옵니다. 한 사람은 AI로 답변 문구를 정리해 문의를 더 빠르게 처리합니다. 다른 사람은 반복되는 질문을 모아 "안내의 어느 부분에서 막히는 걸까"를 살펴봅니다. 고객이 헷갈린 문장 하나를 찾아 수정안을 만들고, 담당자와 상의해 일부 안내에 적용합니다. 일주일 뒤에는 같은 질문이 줄었는지 확인합니다.

둘 다 AI를 잘 썼습니다. 첫 번째 개선도 필요합니다. 다만 두 번째 사람은 받은 일을 처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주의 일이 달라지는지 시험했습니다. 주도성이 보이는 대목은 멋진 수정안을 만든 순간보다 그것을 실제 업무에 연결한 순간입니다.

AI는 그 과정의 비용을 낮춰줍니다. 질문을 분류하고, 수정안을 만들고, 결과를 비교하는 코드를 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의 시간을 빌려야 가능했던 작은 시험을 더 가볍게 시작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 점에서 지능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주도성이 중요해진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도구를 줘도 모두가 그 시험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몰라서 멈추는 사람도 있지만, 고쳤다가 다른 팀의 일을 건드렸다는 말을 들을까 봐 멈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맡은 일을 끝내기에도 벅찰 수 있습니다. 문의가 줄어도 다음 달 처리 건수 평가에서 손해를 본다면, 굳이 줄일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도구가 해결한 문제와 사람이 멈춰 있는 이유가 서로 다릅니다.

샤론 파커와 동료들은 2010년 논문 Making Things Happen: A Model of Proactive Motivation에서 주도적인 행동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동기를 세 갈래로 정리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감각, 할 이유, 그리고 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활력입니다. 이론 모형에서 성격과 지식뿐 아니라 리더십, 일의 설계, 동료 사이의 분위기도 이 동기에 영향을 줍니다.

이 틀로 보면 AI가 주는 도움과 남아 있는 어려움을 나눠볼 수 있습니다. AI는 특히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의 문턱을 낮춰줄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석을 해보고, 처음 만드는 도구의 초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내가 왜 하고 싶은지, 실제로 바꿀 권한이 있는지, 시도에 쓸 여력이 있는지는 따로 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논문이 AI를 실험한 결과가 아니라, 그 모형을 지금의 업무에 적용해본 해석입니다.

그래서 "AI도 줬는데 왜 알아서 하지 않느냐"는 말에는 빠진 것이 많습니다. 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 늘려준 것으로, 움직일 조건을 전부 갖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도성을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만 볼 필요도 없습니다. 주도적인 행동을 연습하게 한 실험이 있습니다. 세계은행 연구진 등이 토고의 소규모 사업자 1,500명을 무작위로 세 집단에 나눴습니다. 일반적인 경영 교육을 받는 집단, 개인 주도성 교육을 받는 집단, 두 교육을 받지 않는 비교 집단이었습니다.

주도성 교육은 먼저 행동하고, 앞을 내다보고, 장애물에 대응하는 방식을 다뤘습니다. 수업에 더해 사업장을 방문하는 후속 지원도 있었습니다. 약 2년에 걸친 추적에서 주도성 교육 집단의 이익은 비교 집단보다 약 30퍼센트 높았습니다. 일반 경영 교육 집단은 약 11퍼센트 높았지만,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A better way to train small business owners: using psychology to teach personal initiative에 설명했습니다.

이 실험으로 모든 직장인의 주도성을 같은 방식으로 키울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육과 후속 지원을 함께 제공한 결과이므로, 마음가짐 하나의 효과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주도성은 타고난 성향이니 채용할 때 골라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 보게 합니다. 적어도 이 조건에서는 주도적인 행동을 가르치고 연습하게 하는 개입이 성과를 바꿨습니다.

후속 결과까지 보면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연구진이 Personal initiative training continues to yield positive benefits after 7 years, but impacts vary with gender에서 보고한 장기 추적에서는 남성 사업자의 이익 증가 효과가 커진 반면, 여성 사업자의 효과는 더 작고 통계적으로 불확실했습니다. 연구진은 업종과 수요의 차이 등을 가능한 설명으로 검토했지만 원인을 확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교육이 모두에게 같은 장기 결과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저는 이 연구에서 성격을 바꾸라는 주문보다 연습의 단위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앞으로 주도적으로 살겠다"는 다짐은 너무 큽니다. 이번 주에 반복된 불편 하나를 골라 내가 바꿀 수 있는 범위에서 시험하고, 다음 주에 결과를 보는 일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내 행동으로 무언가가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고, 달라지지 않았다면 어디서 예상이 빗나갔는지도 남습니다.

앞의 고객 문의 사례로 돌아가면 첫 행동은 전사적인 상담 자동화 계획을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문의에서 같은 질문이 몇 번 나왔는지 세고, 담당자에게 "이 문장을 고쳐서 일주일만 확인해보고 싶다"고 제안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AI에게는 그 작은 시험에 필요한 분류나 문구 초안을 맡깁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정해져 있으니 AI와의 대화도 실제 일로 이어질 자리가 생깁니다.

준비만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질문을 하나 바꿔볼 만합니다. "더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더해 "무엇을 해보면 지금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자료를 더 읽어야 풀리는 불확실성이 있고, 고객 한 명에게 보여줘야 풀리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후자를 계속 AI와의 대화 안에서 해결하려 하면, 계획은 자세해져도 현실에서 얻은 정보는 늘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작의 크기가 중요해집니다. 실패하면 고객에게 큰 손해를 주거나 다른 팀의 일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드는 변경이라면 충분한 검토가 먼저입니다. 반대로 내부 초안을 동료 한 명에게 보여주는 일까지 같은 무게로 다룰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관계자와 범위를 합의할 수 있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크기로 줄이면 첫 행동을 정하기가 쉬워집니다.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 멈추는 것도 이 연습에 포함됩니다. 안내 문구를 고쳤는데 질문이 줄지 않았다면 원인이 문장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배송 상태가 늦게 갱신되는 것이 문제였다면 그쪽을 확인하면 됩니다. 처음 생각한 방법을 밀어붙이는 데만 주도성을 쓰면, AI는 틀린 방법을 더 빠르게 실행하는 도구가 됩니다. 한 번 시작한 일을 수정하거나 접을 수 있어야 다음 시도에도 배운 것이 들어갑니다.

조직에는 이 연습을 실제로 허용할 몫이 있습니다. 전에 쓴 주도적인 사람은 회사가 만듭니다에서는 사람을 보는 관점과 일의 조건을 다뤘습니다. 이번 글에서 그 조건을 더 작게 적으면 "어디까지 시험해도 되는가"가 됩니다. 알아서 하라는 말보다, 바꿔볼 수 있는 범위와 상의할 사람, 다시 확인할 날이 있는 편이 행동으로 옮기기 쉽습니다.

이를테면 "이번 주 두 시간은 반복 문의를 살펴보는 데 쓰고, 문구 변경은 담당자와 확인한 뒤 한 채널에만 적용해봅시다. 다음 금요일에 결과를 같이 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험을 시키면서 기존 업무는 그대로 두면 두 시간이 퇴근 뒤로 밀립니다. 무엇을 잠시 늦출지도 함께 정해야 그 허용이 실제 시간이 됩니다.

결과를 보는 자리도 중요합니다. 잘됐을 때만 주도적이었다고 칭찬하고, 안 됐을 때는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시도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합의한 범위에서 무엇을 예상했고, 무엇이 달랐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같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과에 대한 기대를 없애자는 말이 아닙니다. 실패한 시험에서도 판단할 근거를 얻도록 일을 설계하자는 뜻입니다.

채용에서도 같은 시선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도적입니다"라는 설명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바꿔본 일 하나를 구체적으로 들으면 더 많은 것이 보입니다. 왜 그 일을 골랐는지, 첫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누구의 도움이 필요했는지, 예상과 달라졌을 때 무엇을 고쳤는지. 큰 프로젝트를 이끈 경력만 찾으면, 작은 권한 안에서 일을 바꿔온 사람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이 우리 회사에서 이어질지도 따로 봐야 합니다. 고객을 직접 만나 문제를 푸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던 사람이 여기서는 고객을 만날 수 없다면, 과거의 적극성이 그대로 나오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원자가 움직였던 이유와 우리가 맡길 일이 만나는지, 그 일을 움직일 권한을 실제로 줄 수 있는지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AI가 발전해도 주도성은 영원히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예측이 맞아야 이 연습에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도구를 쓰든 내가 맡은 일에서 불편을 발견하고, 사람들과 상의해 무언가를 바꿔보고, 결과에 따라 판단을 고쳐본 경험은 다음 일을 시작할 때 쓸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AI와 나눈 대화에서 실행되지 않은 계획 하나를 다시 열어보면 좋겠습니다. 그 계획을 완성하려 하지 말고, 현실에서 답을 얻을 행동 하나를 골라봅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어디까지 바꿔볼지, 언제 결과를 확인할지를 적습니다. 그 행동을 위해 필요한 준비에 AI를 쓰면 됩니다.

다음 주에 남길 기록도 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해봤는데, 실제로는 이랬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렇게 하겠다." 그 문장을 하나씩 쌓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주도성의 연습입니다. AI와의 대화에 있던 가능성이 내 경험으로 바뀌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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