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일과 성장6분

AI로 잘 만들수록 결과물이 서로 닮아가는 이유

AI를 쓰면 각자의 결과물은 좋아지지만, 모두가 같은 곳에서 출발하면 서로 닮아갑니다. 그때 차이는 완성도가 아니라, AI가 본 적 없는 것을 내가 먼저 적어두었는가에서 납니다.

AI를 쓰면 각자의 결과물은 좋아집니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도구로 좋아지면 결과물은 서로 닮아갑니다. 잘 만드는 것이 기본이 된 뒤에 내 일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완성도가 아닙니다. AI가 본 적 없는 것을, AI에게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적어두었는가입니다.

기획안 초안을 AI에게 맡기면 금방 그럴듯해집니다. 목차가 정리되고,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끝에는 기대 효과가 세 줄로 붙습니다. 그런데 같은 회의에 올라온 옆 사람의 문서를 넘겨보면 목차도, 말투도, 기대 효과 세 줄도 내 것과 거의 같습니다. 누가 더 잘 썼는지가 아니라 누가 썼는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느낌을 처음 겪은 것은 AI 이전, 인사팀에서 신입 지원 서류를 보던 자리였습니다. 서류가 전부 좋아지자 서류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를 이력서가 완벽해질수록 같이 일해본 사람이 비싸집니다에 적었습니다. 그 글은 뽑히는 자리에서 무엇이 나를 증명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글은 매일의 자리에서 묻습니다. 내가 만든 결과물 하나는 언제 내 것이 되는가.

덜 쓰거나, 더 잘 쓰거나

결과물이 닮아간다는 말에는 흔히 두 가지 처방이 따라옵니다. AI가 만든 것은 개성이 없으니 덜 쓰자. 아니면 프롬프트를 더 잘 쓰자. 둘 다 문제를 결과물의 품질에서 찾습니다. AI가 만든 것이 어딘가 모자라서 닮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실제로 나아졌습니다. 닮아가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각자는 나아지고, 다 같이 닮아갑니다

2024년 연구 Generative AI enhances individual creativity but reduces the collective diversity of novel content는 293명에게 여덟 문장짜리 짧은 소설을 쓰게 했습니다. 일부에게는 AI가 세 문장짜리 출발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다른 600명이 누가 AI를 썼는지 모르는 채로 소설을 읽고 평가했습니다.

AI 아이디어를 받은 사람의 소설이 더 새롭고, 더 잘 쓰였고, 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효과는 원래 창의성 점수가 낮았던 사람에게 가장 컸습니다. 그 사람들의 소설은 창의성 점수가 높은 사람들의 소설과 같은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창의성 점수가 높았던 사람은 AI 아이디어를 받아도 평가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설들끼리 견주어 보니 반대 결과가 나왔습니다. AI 아이디어를 받은 소설은 서로 더 닮아 있었고, AI가 보여준 아이디어 쪽으로 어느 정도 끌려가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사회적 딜레마에 빗댑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AI를 쓰는 편이 낫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하면 전체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폭이 좁아집니다.

이 결과에서 볼 것은 차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겼다는 점입니다. 잘 쓴 것과 못 쓴 것의 차이는 줄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문장이 서툴러서 손해 보던 사람의 불리함이 그만큼 사라졌습니다. 대신 같은 것과 다른 것의 차이가 새로 생겼습니다.

같은 질문에는 같은 출발점이 옵니다

AI는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에 가장 그럴듯한 답을 냅니다. 가장 그럴듯한 답은 그 질문에 대해 세상에 가장 많이 적힌 답과 가깝습니다. "신규 고객을 늘리는 방안을 정리해줘"라고 물으면 그런 답이 출발점으로 옵니다. 옆 사람이 같은 질문을 하면 같은 출발점이 옵니다. 거기서 각자 다듬어도, 연구의 작가들처럼 출발점 쪽으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프롬프트의 말투를 다듬는 것만으로는 잘 풀리지 않습니다. 프롬프트에 든 것이 모두가 아는 것이면, 문장을 아무리 바꿔도 모두가 아는 답이 옵니다. 출발점을 바꾸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그 안에 든 재료입니다. 어디에도 적힌 적이 없어서 AI가 본 적 없는 것. 어제 통화에서 고객이 한 말 그대로, 지난 분기에 우리 팀에서 어긋났던 숫자, 해봤는데 안 됐던 방법 같은 것입니다.

결과를 가르는 줄은 내가 본 데서 나옵니다

이 홈페이지는 만든 것마다 AI에게 준 프롬프트를 전문 그대로 걸어둡니다. 가져가서 그대로 다시 만들어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 프롬프트를 다시 읽으면 결과를 가르는 줄이 어디 있는지 보입니다.

보이스 프롬프터의 프롬프트에는 글자 크기와 줄간격을 조절하게 해 달라는 줄, 어두운 배경에 밝은 글씨로 해 달라는 줄이 있습니다. 어느 프롬프터에나 있는 것들입니다. 결과를 가른 줄은 따로 있습니다. "정해진 속도로 미는 방식은 쓰지 마. 말이 빨라지면 놓치고 느려지면 기다리게 돼서 못 쓴다." 흔한 프롬프터는 정해진 속도로 글자를 밉니다. 이 한 줄이 그 흔한 출발점을 치웁니다.

이 줄은 카메라 앞에서 대본을 읽다가 글자를 놓쳐본 데서 나왔습니다. 그 서비스 소개 글의 첫 문장도 같은 말입니다. 정해진 속도로 글자를 미는 프롬프터는 늘 어긋났다. 프롬프트를 열어두면 결과물은 누구나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열어둘 수 없는 것은 그 줄이 나온 자리입니다. 다음에 무엇을 만들지는 프롬프트가 아니라, 각자 어디서 무엇이 어긋나는 것을 봤는가에서 나옵니다.

넷이 같은 AI에게 물으면 하나가 됩니다

지금 저는 넷이서 일합니다. 한국은 협업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에 적었듯 동료들이 계속 의견을 내고, 그 의견으로 제 결론이 바뀌어 왔습니다. 넷이 일하는 값은 넷이 서로 다른 것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그 넷이 회의 전에 각자 같은 AI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초안을 들고 온다면, 테이블에는 의견 넷이 아니라 비슷한 의견 하나가 네 벌 놓입니다. 각자의 초안은 혼자 썼을 때보다 나아 보일 테니 아무도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연구가 사회적 딜레마에 빗댄 것이 회의실에서는 이런 모양으로 생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AI를 쓰는 편이 낫고, 다 같이 쓰면 팀이 볼 수 있는 폭이 좁아집니다.

그렇다고 AI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바꿀 것은 순서입니다. AI의 첫 답을 먼저 보면 내 생각이 그쪽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니 각자 본 것을 먼저 꺼내놓고, 그다음에 AI에게 묻습니다. 넷이 서로 다른 것을 들고 들어가면 같은 AI에게 물어도 다른 답이 나옵니다.

모든 결과물이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의록, 공지, 정해진 양식의 보고는 닮을수록 좋습니다. 읽는 사람이 어디를 봐야 할지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서는 AI에게 통째로 맡겨도 됩니다.

달라야 하는 것은 판단이 들어가는 문서입니다. 무엇을 할지 제안하는 기획안,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결과물. 이런 문서가 옆 사람의 것과 닮았다면, 그 문서에는 아직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주에 해볼 것 셋

  1. AI를 열기 전에, 내가 본 것 한 줄을 먼저 적습니다. 이 일에서 직접 보거나 들은 것 하나입니다. 고객이 한 말 그대로, 지난번에 어긋났던 숫자, 해봤는데 안 된 방법.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에도 적힌 적 없는 것이면 됩니다.
  2. 그 줄을 프롬프트 맨 앞에 둡니다. 무엇을 만들어 달라는 말보다 먼저 둡니다. 출발점이 거기서 정해집니다.
  3. 받은 결과물에 이름 바꾸기 시험을 합니다. 문단마다 우리 팀, 우리 회사, 우리 제품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읽어봅니다. 바꿔도 그대로 말이 되는 문단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1번에 적은 것을 넣거나, 그 문단을 지웁니다.

잘 만드는 것은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갑니다. 그 뒤로 사람을 가르는 것은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왔는가입니다. 그리고 본 것은 매일의 일에서만 쌓입니다. 고객과 통화한 날, 숫자가 어긋난 날, 해본 방법이 안 된 날. 그날 적어두지 않으면 다음 결과물에는 모두가 아는 것만 들어갑니다.

AI는 모두가 본 것을 잘 씁니다. 나만 본 것은 내가 먼저 적어야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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