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창업8분

회사에서 다음 일을 준비한다는 건 퇴사를 준비하는 게 아닙니다

다음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떠날 준비부터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음 일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 일에서 손을 빼지 않았습니다. 떠날 준비와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은 시간을 반대 방향으로 씁니다.

회사에서 다음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어디에도 말하지 않게 됩니다. 말하면 “나갈 사람”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일은 퇴근 뒤와 주말로 밀려나고, 회사에서는 전과 같은 척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첫 창업을 결심한 뒤 회사에서 제가 한 일은 아이템을 정하고, 만들 것을 만들고, 나갈 날을 세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다음 일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떠날 준비였습니다.

이 글의 결론은 한 문장입니다. 회사에서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과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떠날 준비는 지금 일에서 시간과 마음을 빼내고,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은 지금 일에 다음 일의 질문을 얹습니다. 그리고 다음 일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 번째 쪽이었습니다.

떠날 준비는 이미 목록으로 적혀 있습니다

떠날 준비가 어떤 모습인지는 조사되어 있습니다. 두 연구자가 관리자와 직원 각 100명 가까이에게 “그만두기 전에 무엇이 달라지던가”를 물어 900개가 넘는 행동을 모은 뒤, 1년 안에 실제로 그만둔 사람을 가장 잘 가려내는 13개로 줄였습니다. 2016년 13 Signs That Someone Is About to Quit, According to Research에 정리됐고, 2018년 If You've Got Leavin' on Your Mind: The Identification and Validation of Pre-Quitting Behaviors로 발표된 연구입니다.

목록은 극적이지 않습니다. 평소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팀의 일에 덜 나선다. 최소한만 하는 날이 잦아진다. 긴 일정에 이름을 올리기를 꺼린다. 고객을 만나는 일에 관심이 줄어든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 늘어난다. 이런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사람은 1년 안에 그만둘 확률이 평균의 두 배 가까이였습니다.

이 목록에서 볼 것은 13개가 전부 지금 일에서 손을 빼는 쪽이라는 점입니다. 소리 내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덜 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떠날 준비는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는 채로 진행되고, 본인도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다음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뿐인데, 어느새 긴 일정에 이름을 올리지 않게 되고, 새 고객 건은 다른 사람에게 가게 둡니다. 다음 일을 준비한다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이 목록을 하나씩 채우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음 일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일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을 추적하면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미국의 1979년 청년 종단 조사 자료로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창업한 사람들을 따라간 Should I Quit My Day Job?: A Hybrid Path to Entrepreneurship이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사업을 시작하고 나중에 전업으로 옮긴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바로 전업으로 시작한 사람보다 사업을 접을 위험이 33% 낮았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차이를 학습으로 설명합니다. 월급이 있는 동안 시장이 어떤지, 고객이 누구인지, 이 일이 자기에게 맞는지를 배우고, 그 뒤에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연구에서 하나 더 볼 것이 있습니다. 직장을 유지하며 시작하는 길을 택한 사람은 위험을 더 피하는 성향이었고, 자기 능력을 낮게 보는 편이었습니다. 겁이 없어서 잘된 것이 아니라 겁이 있어서 천천히 갔고, 그래서 배울 시간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 성향이 결과에도 따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연구가 완전히 가르지는 못합니다.

스웨덴의 지식집약 산업 임금근로자를 8년 동안 따라간 Hybrid Entrepreneurship도 직장을 유지한 채 시작하는 사람이 창업 전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이라고 보고합니다. 임금노동에서 창업으로 가는 길이 한 번의 단절이 아니라 단계라는 뜻입니다.

창업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미국 신생기업 전체의 행정 자료를 분석한 Age and High-Growth Entrepreneurship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상위 0.1% 기업의 창업자 평균 나이는 45.0세였습니다. 같은 산업에서 일한 경험이 성공을 훨씬 잘 예측했습니다. 20대에 뛰어든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서 20년을 보낸 사람이었고, 그 20년이 다음 일의 재료였습니다.

세 연구를 겹쳐 놓으면 한 가지가 보입니다. 다음 일에서 잘된 사람은 회사 안의 시간을 줄인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에서 더 많이 가져간 사람이었습니다.

두 준비는 시간을 반대로 씁니다

떠날 준비와 다음 일 준비의 차이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시간을 쓰는 방향입니다.

떠날 준비는 지금 일에서 시간을 빼서 밖으로 보냅니다. 회사에서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남은 시간을 아이템과 이력서에 씁니다. 그러면 회사의 하루는 견디는 시간이 되고, 거기서는 아무것도 새로 배우지 않습니다. 제 첫 창업이 그랬습니다. 만드는 것은 빨랐습니다. 고객에게 묻지 않았고, 혼자였고, 8개월 만에 접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고객에게 묻는 법을 연습할 자리가 회사 안에 있었는데, 저는 회사를 떠날 사람의 자리로만 썼습니다. 창업에서 어려운 것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글은 그 뒤에 배운 것을 적은 것입니다.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지금 일에 다음 일의 질문을 하나 얹습니다. 다음 일이 창업이라면 지금 고객 응대에 “이 사람은 왜 이걸 원하나”를 얹고, 다음 일이 리더 역할이라면 지금 맡은 일에 “이걸 다른 사람도 판단하며 할 수 있게 하려면”을 얹습니다. 일의 양은 같은데 그 일에서 가져가는 것이 달라집니다.

이 방향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Future work selves: How salient hoped-for identities motivate proactive career behaviors는 직장인 표본 넷(397명 · 103명 · 53명 · 233명)에서, 앞으로 일하는 자기 모습이 선명한 사람일수록 기술을 익히고 사람을 만나고 경력을 계획하는 행동을 더 했다고 보고합니다. 시차를 두고 다시 측정해도 그 효과가 남았습니다. 선명한 다음 그림은 지금 일을 덜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림이 자세하기만 하고 선명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었습니다. 긴 계획서가 아니라 또렷한 한 문장이 움직입니다.

회사를 옮기지 않아도 경력은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글에서 지금 맡은 일에서 얻은 경험을 다음 역할로 잇는 주기를 다뤘습니다. 이 글은 그 주기가 떠날 준비와 어떻게 다른지를 적은 것입니다.

회사가 그렇게 읽어주지 않을 때

안에서 준비하는 것이 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회사가 다음 일을 떠날 준비로 읽습니다. 다음 일을 말한 순간 중요한 일에서 빠지고, 긴 프로젝트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숨기게 되고, 숨기면 밖에서 보기에 떠날 준비와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드러낼 것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일에서 더 하려는 것입니다. 고객 건을 더 맡고 싶다, 이 일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게 정리해보고 싶다는 말은 떠날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다음 일의 질문을 얹은 사람은 지금 일의 결과로 보입니다.

둘째, 둘 다 하다가 둘 다 못 하는 때가 옵니다. 밖의 일이 회사의 시간을 먹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음 일 준비가 아니라 떠날 준비의 다른 모습입니다. 기준은 단순합니다. 회사의 시간에는 회사의 일에서 배우고, 밖의 시간에는 밖의 일을 합니다. 둘이 섞이면 위의 13개 목록이 돌아옵니다.

셋째, 규정이 있습니다. 겸직과 직무발명, 경업금지는 회사마다 다르고, 서류는 사이가 좋을 때 읽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앞의 창업 글 마지막 절에 판례와 법 조항으로 적어뒀습니다.

회사가 안에서의 준비를 제도로 만든 곳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C랩은 2012년 사내벤처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2025년 말까지 사내 423개, 사외 536개의 과제와 스타트업을 거쳤고, 2015년부터는 과제를 회사 밖으로 분사시키는 스핀오프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C랩 15개 스타트업, 'CES 2026' 전시). 회사가 “다음 일을 여기서 준비해도 된다”고 말해준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이런 제도가 없습니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제도 없이도 되는 크기의 준비입니다.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것

제도가 없어도 되는 크기로 네 가지를 적어봅니다.

  • 다음 일을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무엇을, 누구와, 어떤 문제를 푸는 일인지. 위 연구의 조건은 자세함이 아니라 선명함이었습니다. 계획서가 아니라 한 문장입니다.
  • 지금 맡은 일 하나에 그 문장이 묻는 질문을 얹습니다. 다음이 창업이면 고객에게 묻는 법, 다음이 리더 역할이면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도 판단하며 할 수 있게 넘기는 법, 다음이 새 직무면 그 직무의 사람과 한 번 같이 일해보는 것입니다.
  • 13개 목록을 거꾸로 씁니다. 긴 일정에 이름을 올립니다. 고객을 만나는 일을 하나 맡습니다. 떠날 준비와 가장 먼 행동이고, 다음 일에 가장 쓸모 있는 경험이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 석 달 뒤에 적습니다. 다음 일에 가져갈 것이 하나 생겼는지. 안 생겼다면 질문을 잘못 얹었거나, 사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일을 생각하는 것은 회사를 등지는 일이 아니고,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은 다음 일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둘을 가르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번 주에 나는 지금 일에서 무엇을 덜 했고, 무엇을 더 했는가.

저는 두 번째 창업을 같이 일해본 사람들과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만난 사람이 아니라, 일을 같이 하는 동안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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