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로롱
일과 성장8분

10년을 해도 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1만 시간은 체스와 바이올린에서 잰 숫자입니다. 상황이 매번 바뀌는 일에서는 연습한 시간이 성과 차이를 거의 설명하지 못했고, 차이를 가른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에 답이 돌아왔는지였습니다. 회사 일은 대부분 답이 늦게 오거나 오지 않는 자리라, 연차는 쌓여도 전문성은 저절로 쌓이지 않습니다. 내 일에 답이 돌아오게 만드는 방법 셋을 적습니다.

지난 글에서 면접의 지원 동기 칸을 10년 동안 채점했고 그 채점이 틀렸다고 적었습니다. 적고 나니 질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1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동안 왜 늘지 않았을까. 대충 본 것은 아닙니다. 매번 진지하게 봤습니다. 이 글은 그 질문의 답입니다. 전문성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에 답이 돌아왔는지이고, 회사 일의 대부분은 답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연차는 쌓여도 전문성은 저절로 쌓이지 않고, 답이 돌아오는 자리는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적어둘 것이 있습니다. 연차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글이 아닙니다. 10년을 한 사람은 10년어치를 압니다. 어느 부서에 먼저 물어야 하는지, 이 표현이 어디서 안 통하는지 같은 적힌 적 없는 것들이 그 시간에 쌓입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더 좁습니다. 같은 10년을 한 두 사람의 차이는 시간에서 나지 않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재능보다 그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입니다.

1만 시간은 체스와 바이올린에서 잰 숫자입니다

"1만 시간" 이야기의 출발은 1993년 논문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입니다. 베를린 음악원의 바이올린 전공생들을 비교해, 최고 그룹이 스무 살까지 혼자 연습한 시간이 1만 시간에 가깝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논문이 센 것은 아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교사가 고른 과제를, 분명한 목표를 두고, 결과를 바로 알려주는 조건에서 반복한 시간만 셌습니다. 그냥 연주한 시간과 무대에 선 시간은 거기 들어가지 않습니다.

2014년에 그 뒤의 연구들을 모아 다시 잰 메타분석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은 157개 결과를 봤습니다. 연습 시간이 성과 차이를 설명하는 비율은 체스 같은 게임에서 26%, 음악 21%, 스포츠 18%였습니다. 교육에서는 4%였고, 그 밖의 직업에서는 1%가 안 됐으며 통계적으로 의미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둘 있습니다. 직업 쪽 결과는 일곱 개 연구, 321명에서 나온 것이고, 연구자들 스스로 그 분야에서는 연습이 무엇인지가 잘 정의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 논문의 저자는 2016년 반론 Summing Up Hours of Any Type of Practice Versus Identifying Optimal Practice Activities에서 그 메타분석이 온갖 연습 시간을 다 더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모든 연습의 값이 같다는 가정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논쟁에서 양쪽이 동의하는 것 하나를 가져옵니다. 한쪽은 시간이 설명하는 몫이 작다고 하고, 다른 쪽은 답이 돌아오는 시간만 세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맞든 결론은 같습니다.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에 답이 돌아왔는지가 전문성을 가릅니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에서는 시간만 쌓입니다

같은 메타분석에 분야보다 더 분명한 결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활동을 환경이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로 다시 나눴을 때, 달리기처럼 환경이 거의 안 바뀌는 활동에서는 연습 시간이 성과 차이의 24%를 설명했고, 펜싱처럼 상대가 있는 활동에서는 12%, 비행 중 비상 상황 대응처럼 매번 다른 활동에서는 4%였습니다. 환경이 매번 바뀔수록 시간이 설명하는 몫이 줄어듭니다.

왜 그런지는 직감을 서로 반대편에서 연구해 온 두 심리학자가 2009년에 같이 쓴 논문 Conditions for Intuitive Expertise: A Failure to Disagree가 정리했습니다. 직감이 믿을 만해지는 조건은 둘입니다. 환경에 규칙이 있을 것, 그리고 그 규칙을 배울 기회가 있었을 것. 배울 기회란 판단한 뒤에 맞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소방관은 불이 바로 답을 줍니다. 체스는 몇 수 뒤에 답이 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적어둔 경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자기가 전문가라는 느낌은 판단이 맞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사 일을 이 기준에 놓아보면 제 10년의 답이 보입니다. 면접에도 규칙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는 우연이 아닙니다. 문제는 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떨어뜨린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일하게 됐는지는 영원히 모릅니다. 뽑은 사람이 잘했는지는 몇 년 뒤에, 팀장과 업무와 운이 섞인 채로 옵니다. 그러니 백 번을 봐도 채점은 그대로입니다. 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늘 재료가 없었습니다. 10년 동안 제가 한 것은 연습이 아니라 반복이었습니다.

면접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획안이 통과된 것이 좋은 기획이어서인지 그날 분위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보고서를 고쳐 받아도 왜 고쳤는지 듣지 못하면 다음에도 같은 자리를 틀립니다. 승진은 몇 년에 한 번 오고, 그마저 무엇에 대한 답인지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회사의 일 대부분은 비행 중 비상 상황보다도 답이 늦고, 그 답마저 다른 것과 섞여 옵니다. 연차는 그런 자리에서도 쌓입니다. 전문성은 쌓이지 않습니다.

답이 돌아오던 자리는 하나였고, 그 자리가 줄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답이 가장 빨리 돌아오던 자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 맡은 일의 초안입니다. 쓰면 옆 사람이 고쳤고, 고친 이유를 들었습니다. 초안을 쓰던 자리가 배우는 자리였다고 쓴 이유가 그것입니다. 경력의 첫 몇 년이 가장 빨리 느는 시기였던 것은 그때가 가장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때만 답이 바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AI로 줄고 있습니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초급 업무라고 썼던 바로 그 일들입니다. 답이 돌아오던 거의 유일한 자리가 줄고, 남은 자리는 원래부터 답이 안 오던 자리입니다. 그러니 답이 돌아오게 만드는 일은 처음 몇 년의 운에 맡길 수 없고, 연차와 상관없이 각자 만들어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AI가 가져가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AI는 답을 바로 돌려주는 상대이기도 합니다. 내 초안을 넣고 허점을 찾게 하면 몇 초 만에 돌아옵니다. 다만 그 답이 맞는지는 또 제가 봐야 합니다. 검토는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고 쓴 이유가 여기서도 돕니다. AI의 답은 빠른 답이지 맞는 답은 아니라서, 빠른 답을 받은 뒤에도 현실의 답을 기다리는 줄은 그대로 남습니다.

첫 창업에서 답은 8개월 뒤에 왔습니다

제 경험에서 답이 가장 늦게 온 자리는 첫 창업입니다. 혼자 시작했고, 만드는 것은 빨랐고, 고객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묻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답은 8개월 뒤에 왔고, 그때는 접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매일 일했지만 그 8개월에 돌아온 답은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 창업에서 바꾼 것은 그 간격입니다. 다른 서비스에서 출발해 묻고, 듣고, 바꾸며 지금 모습이 됐습니다. 창업에서 어려운 것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쓴 이유의 절반이 여기 있습니다. 답이 빨라졌다고 판단이 늘 맞게 된 것은 아닙니다. 틀린 것을 8개월 뒤가 아니라 그때그때 알게 됐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복과 연습의 차이입니다.

읽은 다음에

내 일에 답이 돌아오는지를 먼저 봅니다. 이번 주에 한 판단 셋을 적고 두 칸을 채웁니다.

이번 주에 한 판단맞았는지 언제 아나누가 말해주나
지원자 한 사람을 다음 단계로 올렸다모른다아무도
제안서의 가격을 낮췄다다음 달고객
처음 맡은 사람에게 줄 일의 범위를 정했다석 달 뒤내가 알아채면

"모른다"와 "아무도"가 많은 일일수록 10년을 해도 늘지 않는 일입니다. 그 칸에 답이 오게 만드는 방법은 셋입니다.

  1. 답이 오기 전에 예측을 적어둡니다. 면접이라면 "이 사람은 여섯 달 뒤 ___ 할 것이다" 한 줄입니다. 여섯 달 뒤에 꺼내 맞춰봅니다. 틀렸으면 무엇을 보고 그렇게 썼는지가 고칠 자리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이 줄을 적어뒀다면 채점이 틀렸다는 것을 10년 뒤가 아니라 1년 뒤에 알았을 것입니다. 회고에 세 칸을 두자고 쓴 글의 첫 칸이 이것과 같은 자리입니다.
  2. 답을 돌려주는 사람을 한 명 둡니다. 내 초안을 고쳐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친 이유를 한 줄 묻습니다. 내가 고치는 쪽이면 이유를 한 줄 말해줍니다. 같은 일을 오래 한 사람에게 이 판단을 어떻게 했겠는지 묻는 것도 답입니다. 결과가 아직 오지 않은 판단에 미리 오는 답이기 때문입니다.
  3. 답이 늦게 오는 일은 쪼개서 빨리 오게 합니다. 분기 목표는 분기 끝에야 답이 오지만, 그 안의 2주짜리 목표는 2주 뒤에 답이 옵니다. 실행이 빨라질수록 목표를 더 자주 보자고 쓴 것이 이 셋째입니다. 빨리 맞히려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빨리 알려는 것입니다.

연차가 10년이면 10년어치 반복이 있습니다. 그중 답이 돌아온 시간만이 전문성이 됐습니다. 다음 10년은 그 비율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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